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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매임지
2009.07.18 13:08 어제/어제의 책·음악
온다 리쿠의 소설은 묘한 힘이 있다. 책장을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힘. 그래서 온다 리쿠를 읽는다는 것은 한편으론 두렵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소설도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빨간 표지에 몇몇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온다는 책. 선택받은 사람들이 오직 딱 하루만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다는 그 책은 기묘하면서도 묘한 책이다. 4장으로 이뤄졌다는 그 책처럼 이 소설 역시 4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그 4장이 각기 다른 구성으로 쓰여져있다. 액자 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  각 장이 모두다 흥미롭다.

그 중,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을 찾아내는 이야기인 1번째 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글쎄요. 일본사회 자체가 책 읽는 사람에게 냉담해요. 책을 읽는다는 건 고독한 행위고, 또 시간도 걸리잖습니까. 그런데 일본사회는 바빠요.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느긋하게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책 따위는 읽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상사에게 회식에 못 가겠다고 한다고 해요. '오늘은 얼른 집에 가서 저번에 줄 서서 산 비디오 게임을 하고 싶거든요'라고 거절합니다. 상사는 쓴웃음을 짓기는 하겠지만 '못 말리는 녀석이군. 저녀석 오타쿠라니까' 하고 말죠. 하지만 '오늘은 얼른 집에 가서 책을 읽고 싶거든요'라고 거절하면 어떨까요? 상사는 틀림없이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거고, 저에 대해 반감을 가질 겁니다. 비디오 게임은 획일적이고 본인의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남들과 다른 일을 생각하는 사람, 혼자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간주됩니다. 상사의 처지에서 보면 '저 녀석, 내가 모르는 데서 나 몰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같은 식이죠. 요즘 '가치관의 다양화'니 뭐니 하지만, 저는 완전히 양극화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 다양함이 존재하는 세계와 대다수의 보수적인 세계, 제가 지금 있는 환경도 그렇지만요, 그 세계는 지금 롤러로 밀듯이 무조건 한 가지 색깔로 칠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수파에 속하는 평균적인 일본인은 다양한 쪽 세계의 사람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지만, 자기하고 같은 보수파에 속하는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은 미워합니다. 혼자서 다른 걸 하지 마, 혼자서 다른 걸 생각하지 마, 하고 말이죠. 일본 사람은 인간관계를 귀찮아하면서도 또 고독에는 굉장히 약하지 않습니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다 함께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있는 셈이에요. 저 사람도 나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난 고독하지 않아. 그런 거죠. 그래서 자기만 다르다든지,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는 일에 많이 민감한 걸 겁니다."

굳이 일본 사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누구나가 똑같이 경쟁사회에 내몰리고 저마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 다른 걸 한다는 것은 상당히 괴이한 일로 여겨진다. 

정말이지 회식 자리를 빠지는 이유가 '오늘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이면 안되는 걸까?

- 2009년 40번째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 - 6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posted by 볼매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