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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매임지
이번 여름 휴가의 테마는 '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원래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긴했지만 마니아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좋다', 이런 느낌?

그런데 내 여름 휴가를 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으로 내몬 건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속에서 반 고흐는 그저 그림 잘 그리는 화가 정도가 아니었다.

민중들의 삶을 아파하고, 그것을 덜고자 했던,

끝없이 여자들을 사랑했던,

예술가들의 낙원을 꿈꿨던

열정 넘치는 사상가이자 로맨티스트, 그리고 예술가였다.

그런 고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날 사로잡았고,

어느새 나는 암스테르담행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흐가 프랑스 태생인 줄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반 고흐는 네덜란드 태생이다. 



네덜란드 북쪽 그루트 준데르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뮤지엄에서는 고흐의 그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첫 여행지의 목적지로 반 고흐 뮤지엄을 택한 것이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반 고흐 뮤지엄으로 택했다.

숙소와 뮤지엄은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단지 그 이유로 숙소를 결정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드디어 입장.

아쉽게도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모든 것들을 눈과 마음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을 나도 믿을 수가 없는데...


반 고흐 뮤지엄에서 직접 본 고흐의 그림들은 붓터치 하나 하나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미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생동감을 넘어 그야말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늘 책이나 인터넷에서만 보던 그림을 직접 보니 그 느낌은 상당히 달랐다.

우선 대부분의 그림들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밝게 처리돼 있었다.

그림에 2cm X 2cm 정사각형을 그려 본다면, 그 안에도 무수히 많은 색과 터치가 들어가 있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곳에는 고흐의 초기 작품들인 다소 어두운 배경들의 그림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감자먹는 사람들과 성경이 있는 정물 등이 그렇다.

감자먹는 사람들은 책에서만 봤을 때는 세세히 볼 수 없도록 어둡게 표현돼 있었는데, 실제로 사람 한 명 한명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경이 있는 정물은 목사인 아버지와 신앙을 버린 고흐 사이의 갈등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린 그림인데,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는 성경책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그 앞에 놓인 작은 책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다.

함께 하지만, 결코 함께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사이를 말해주는 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본 이 그림은 상당히 대형 작품이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성경책과 에밀 졸라의 책도 전시돼 있었다. 

해바라기와 아이리스, 아몬드 꽃이 핀 나무들 등 여러 가지 꽃 그림들도 소장돼 있다.

나는 아이리스가 마음에 들어 아이리스 그림이 그려진 수첩과 볼펜을 사왔다.

아이리스는 아를의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그린 그림인데, 반 고흐 뮤지엄에 있는 건 노란색 배경, 뉴욕에 소장돼 있는 건 핑크색 배경이다.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미칠 수도 있는 걸까? 정신 분열이 있기 때문에 무아의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걸까?


아몬드 꽃이 핀 나무는 조카가 태어난 걸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인데, 그래서인지 밝은 느낌이 강하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본 뒤 아래층에 있는 기념품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곳에서 나는 절제의 정신을 잡느라 꽤나 노력했다.

그럼에도 몇십분 동안 이 곳에서 헤매며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고흐와 관련된 책부터 고흐의 그림이 들어있는 엽서, 수첩, 퍼즐, 컵, 넥타이, 우산 등 각종 기념품들이 즐비했다.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전부 사고 싶었지만 실용성을 생각해 엽서와 수첩, 볼펜만을 들고 박물관을 나왔다.

오늘은 고흐의 그림들을 직접 보았고,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그 그림들이 있는 장소를 찾아 떠날 터라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설레임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posted by 볼매임지
휴가를 다녀와 사진들을 보니, 포스팅할 것들이 산더미입니다.

힘들고, 지쳤던 날도 많았지만 지나고보니 그게 다 고스란히 제 재산이 되는군요.

이번 여행의 테마에 대해서는 천천히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곁가지들을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첫 여행의 도착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좁고 높은 모양의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정말 큰 장난감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대체 네덜란드 사람들은 불편하게 왜 이렇게 집을 좁게 만들었을까요?

이유는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땅은 좁고 인구밀도는 높은 네덜란드는 커튼세는 물론 건물의 폭에 따라서도 세금을 걷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폭이 좁은 집들을 짓게 됐다고 합니다. 건물의 폭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더 살 수 있는 공간을 독차지한다라는 개념인 듯 하네요.  

우리나라는 이런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 없죠? 저마다 넓고 큰 집을 짓지 못해, 가지지 못해 안달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제주도까지도 중대형 아파트들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다시 네덜란드 건축 이야기로 돌아가면, 건물이 반듯하지 않고 삐뚤삐뚤한 게 보이죠? 그리고 잘 보면 위로 갈수록 건물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건물이 기울어진 건 다들 아시는 것처럼 간척한 도시이다보니 지반이 약하기 때문이고요. 위로 갈수록 건물이 튀어나와 있는 건, 워낙 공간이 좁기에 물건을 집에 들여놓을 때 도르래(이사할 때 쓰는 거 이거 맞나요?)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 때 다른 곳에 흠집을 내지 않고, 이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호텔의 객실도 좁습니다. 이 곳은 제가 묵었던 호텔인데요. 처음 들어갔을 땐 너무 좁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시내를 조금 돌아보니, 다른 호텔들도 다 좁더라고요. 

이렇게 좁은 건물들에 멋을 부리기 위해 네덜란드 사람들이 고안해낸 것이 바로 장식들입니다. 집의 지붕에 하얗게 장식을 하거나 창문틀 등을 이용해 겉모습에 많이 신경을 썼는데, 그 때문인지 건물들이 더욱 장난감처럼 보입니다.




도시 곳곳이 여러 갈래의 운하들로 이루어진 암스테르담에는 작은 보트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꽤 큰 보트는 주거 공간과도 같이 생활 공간으로 꾸며진 곳들도 많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만난 특이한 건물입니다. 마치 도서관의 책장이 연상되는데요. 저 작은 서랍장 같은 곳에도 정말 알차게 공간들이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posted by 볼매임지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쁘띠 프랑스 문화마을에 다녀왔다.
요즘 블로거들의 포스팅도 많이 이어지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많은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어떤 면에서 실망을 했는지 여행 여정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 셔틀버스 운행
오랜만에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대성리까지 갔다. 
쁘띠 프랑스 마을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쁘띠 프랑스 마을은 대성리 역과 마을 간에 셔틀 버스(약 20분 소요)를 운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셔틀 버스 운행 시간에 맞춰 여행 계획을 짜기엔 시간상 조금 무리가 있다.

대성리역에서 쁘띠 프랑스 마을행 셔틀의 운행 시간은
9시, 11시, 13시, 15시, 17시 30분이다.

쁘띠 프랑스 마을에서 대성리행 셔틀의 운행 시간은
8시30분, 10시 20분, 12시 20분, 14시 20분, 16시50분, 18시20분이다.

9시에 대성리에서 버스를 타고, 쁘띠 프랑스에서 놀다가 다시 셔틀을 타려면
1시간만에 뚝딱 보고 나오거나 3시간을 여유있게 보내는 수밖에 없다.
11시나 13시에 도착해도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에 교외까지 나온 이들에게 1시간 동안 빨리 구경하고 나가는 것은 너무 빠듯한 일정이다. 그렇다면 3시간 동안 여유있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쁘띠 프랑스 마을은 3시간 동안 여유있게 돌아볼 만한 곳이 없었다.


2.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는 어디에?
쁘띠 프랑스 마을은 그 전에도 언론에서 몇번 소개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실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 이후로 급격히 주목받고 있다.

나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의 열혈 시청자이기 때문에 드라마의 흔적이나 느끼고 싶어 이 곳을 찾았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드라마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너무 적었다. 드라마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해 드라마의 명장면들을 전시해놓거나 하는 작은 배려 등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석란시향 연습실로 나오는 곳의 복도이다. 이 곳을 보고 드라마 장면들이 떠올랐지만 막상 연습실로 들어가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불을 꺼놓아 어두컴컴한 곳에 드라마와 상관없는 영상만이 딸랑 틀어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황량함에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감동은 찾을 수 없었다.

강마에의 사무실로 나오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를 주의 깊게 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곳이 강마에 사무실인지 알 수조차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이 곳은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3. 만들다 만 듯한 휑한 시설물들
그러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꾸 스며드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어딜 가나 뭔가 엉성하고, 덜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어리둥절했던 곳은 바로 이 곳, 전망대이다. 

전망대 꼭대기까지 올라가봤지만 그 곳엔 아무 곳도 없었다. 그저 창문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쁘띠 프랑스 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이 곳이 마을이 가장 잘 내다보이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더더욱 실망스럽다.


강마에 사무실이 있는 곳의 위층을 올라가면 여러개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단지 테이블과 의자만 있고,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모를 정도, 더군다나 이곳 이층은 프랑스 같은 느낌도 전혀 들지 않는다.

또 프랑스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곳은 탈의실도 없을 뿐더러 옷이 그저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다. 영 입어볼 생각이 안드는 것이다. 차라리 이 공간에 탈의실도 비치하고, 사진을 찍어 전시까지 한다면 좀 더 효과적이고 참여적인 공간이 됐을 것이다.  


그나마 가장 볼만했던 곳이 생텍쥐페리 기념관이다. 생텍쥐페리의 메모 및 생애 등에 것들이 전시돼 있다.

쁘띠 프랑스 마을은 분명히 좋은 기획의도로 지어진 곳이고,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만족감을 가지고 돌아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개선해야 될 점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셔틀버스 배차시간 조정, 다양한 참여 공간 및 휴식 공간 제공, 방치된 공간의 효과적인 활용 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쁘띠 프랑스 마을의 성인 입장료는 8,000원이지만 현재는 개관 기념으로 3,000원이 할인된 5,000원을 받고 있다.

"쁘띠 프랑스 마을을 욕하다니, 해보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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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한복판엔 참으로 기괴한 교회가 하나 서 있다.
다른 건물들을 압도할 정도로 꽤 높은 크기의 교회인 데, 그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온전한 모습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이저 빌헬름 추모교회. 이 교회의 사연은 이렇다.

1891년부터 1895년까지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113m의 종탑이 있는 교회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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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이 폭격을 맞기 전 카이저 빌헬름 교회의 모습이다. (출처 : 카이저 빌헬름 교회 홈페이지 http://www.gedaechtniskirche-berlin.de/)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11월 22일 영국군의 폭격으로 교회의 왼쪽 탑이 부서져 버렸다. 이에 서베를린 정부는 교회의 붕괴를 우려해 철거 계획을 세웠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철거 계획은 무산, 교회를 보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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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재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63m의 종탑으로 남아 있다. 무려 50m의 종탑이 사라져버렸지만 여전히 웅장한 모습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교회에 드나들 수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구멍난 천장을 통해 하늘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교회 개방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건물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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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이 교회는 전쟁의 폭력을 그대로 드러낸 흉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은 이 교회가 사라지기보다는 늘 보면서 역사를 상기하는, 반전의 기념물로 남기기로 한 것이다.

최근 서울시청사 철거 모습을 보면서 베를린의 이 교회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뿐 아니라 독일 곳곳에서는 역사를 보존시키려는 노력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일지라도 독일은 그것을 말 그대로 '길이길이 보존'하고 있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손쉽게 잊어버린다. 아픈 과거, 부끄러운 과거는 눈에서 보이지 않도록 모두 청산해버리는 데만 이골이 나있다. 그러니 그 누구도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무너진 부분을 강화유리로 제작해 부실공사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자는 의견도 손쉽게 묵살됐고, 한 사람의 화풀이로 인해 불타버린 숭례문도 원형대로 복원 중이다.

성수대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누가 성수대교를 보며 그 다리가 무너져내렸다는 것을 알게 될까. 복원된 숭례문을 보며, 이 곳이 불탔던 곳이라는 것을 누가 기억할 수 있을까?

서울시청사, 분명히 치욕스런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시청사에 얽힌 역사를 배운 뒤 서울시청사를 보면서 일제 치하 시절을 기억한다. 결코 사랑스러운 장소는 아니지만,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장소이다.

그런데 그러한 서울시청사가 하루 아침에 철거됐다. 모두 허문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 괜찮은가? 오세훈 시장은 독일의 국회의사당을 예로 들며, 서울시청사도 새롭게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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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현재의 독일 국회의사당을 과거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스타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이 만든 유리돔을 떠올리고 또 그것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나치 정권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됐던 곳을 보고자 온 사람들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이 곳이 거의 조명받지 못하다가 유리돔이 생긴 이후,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래서 앞쪽 본관 건물은 건드리지 않고, 뒤쪽 태평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 해 복원하겠다는 말은 그럴싸 해 보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인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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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사 조감도(출처 : 서울시 보도자료)

무엇보다 서울시청사의 조감도를 보면, 기존의 서울시청사와 뒤편의 신시청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둘이 서로 별개의 건물로 보인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이다.

독일 국회의사당이 기존 건물과 돔의 조화로운 모습이라면 신서울시청사는 심각한 부조화이다.

이 곳을 보며 누가 서울시청사의 과거를 생각할 지, 새로운 건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탄할 지 눈 앞이 까마득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복원'하고자 한다면, 기존 서울시청사와 신시청사가 잘어울려야 복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우리나라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어느 곳을 보여주며, 이게 우리의 전통이고 역사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청산'에만 급급하지 않고, '보존'과 '기억'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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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까지 갔다와서 유태인과 장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되지 않는다. 그래서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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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서면, 바로 이 장벽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BERLINER MAUER 1961-1989'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마치 묘의 비석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지금 이 길로는 차들이 지나다닌다. 더 가까이 다가가 찍고 싶었지만 자전거와 차들의 이동을 방해할 수 없었기에 멀찍이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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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은 바로 이 브란덴브루크문을 중심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분단의 상징으로 동독과 서독이 나뉘어있을 때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 곳에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1989년 장벽이 무너졌을 땐 이 문을 오고간 사람들이 10만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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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텐부르크문 앞 안내판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의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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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 광장 남동쪽에 위치한 토포그라피테스 테러에선 장벽들과 함께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이 돌덩이들이 한 나라를 가르고, 동과 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다는 게 사실임에도 믿기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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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 과장에도 베를린 장벽의 흔적은 남아있다.

베를린 장벽은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지만 장벽이 있었던 길만큼은 확실히 표시해두고 있다.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다짐일런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쉽게 넘을 수 없었던 그 길을, 오늘날은 힘차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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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건축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른다.
요즘에야 재미를 느끼지만 학교 다닐 땐 세계사나 미술 시간이 싫기만 했기에 무슨 양식이니 무슨 기법이니 이런 것들은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보고 아름답다, 멋지다라는 건 느낄 수 있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닌가 싶다.

독일에 가서 놀란 것은 참 멋진 건축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유럽만의 특징이 있는 건물들이나 역사적인 건물들은 차치하고, 현대적인 건물만을 봐도 멋진 곳이 많았다.

그 중 베를린의 건축물들 몇 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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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역사박물관이다.
정면은 특이점이 없으나 뒷편엔이런 멋진 건축물이 숨어 있었다.

이건 아이 엠 페이의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그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독일역사박물관에 간 것도 순전히 이걸 보기 위해서였다. 이걸 보려고 박물관 한바퀴를 부산히 돌았는데, 찾고 보니 박물관에 입장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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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이다.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이 건물을 보는데 찰리 채플린이 떠올랐다.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큼직만한 문자가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이곳에선 동독에서의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사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입장료가 비싼 편이라 들어가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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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이다.
부끄럽게도 이게 무엇인지는 잘모르겠다. 다만 앞에 펼쳐진 쫙 뻗은 건축물도 보여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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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이다.
이 건물 자체는 별 특징이 없지만 천장 유리돔 때문에 이 사진을 골랐다. 사실 이쪽에선 유리돔이 잘안보이긴한데, 반대쪽으로 돌아가면 국회의사당을 압도하는 유리돔을 볼 수 있다.

이 돔은 영국의 스타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경이 설계했다고 한다. 저 돔은 나선형 계단으로 돼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는 있으나, 아침부터 줄이 너무 길게 서있어서 올라가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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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 광장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난 뒤, 이 광장은 마치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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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센터이다.
포츠담 과장에 위치해 있다. 이건 소니센터 내부에서 찍은 것인데, 소니센터는 굉장히 큰 여러개의 건물들의 집합으로 이뤄져있다. 천장의 유리 지붕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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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보너스.
베를린 곳곳에서는 저마다 모양을 달리한 귀여운 곰들을 만날 수 있다. 곰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뒀는데, 총 10마리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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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일 여행에서 돌아보고 온 곳은 뮌헨과 퓌센,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이다. 그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퓌센이었고, 볼거리가 많았던 곳은 베를린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중에서 꼭 가봐야 할 최고의 장소를 뽑자면 망설임 없이 '유태인 박물관'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이란 곳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곳은 볼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곳이다. 그야말로 '철학'이 넘쳐나는 공간이다.

유태인 박물관은 다니엘 리벤스킨트가 설계했다.
다니엘 리벤스킨트, 9.11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세워질 프리덤 타워를 설계한 사람으로 현대에 가장 추앙받는 건축가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이 건축가의 작품이 있으니, 코엑스 건너편에 있는 아이파크 건물이 그것이다.

아무튼 다시 유태인 박물관 이야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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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에서 본 '유태인 박물관'의 외부 모습이다. 건물 내부는 온통 기이한 모양의 창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창'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창 역시 옆이 긴 직사각형이 사선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모습이다.

독일에서 유태인들의 삶이란 것이 원만한 창문으로 밖을 바라볼 수 없었던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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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의 공간이다. 길지 않은 이 길을 걸어갔다 다시 나오는 곳인데, 쭉 걸어가면 암흑이 나온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 깔린 쇳덩이에서 독특한 소리가 나는데, 이것이 이 공간 전체에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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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덩이의 정체는 바로 이 것. 희생된 유태인들의 얼굴을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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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밟을 때 나는 소리들을 통해 당시 유태인들이 느꼈을 공포를 소리로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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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의 주제는 'Reflex'. 모든 것들이 거울을 통해 봐야만 제대로 보인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거꾸로 된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지, 거울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삶들이 또 유태인들의 삶이었을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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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이런 계단이 보인다. 올라가려다가 '엇'하고 다시 내려왔다.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다른 길 밖에 보이지 않았던 절망적인 삶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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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하나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유태인 박물관은 공간 구석구석마다 세심하게 설계돼 있다.
헤드폰을 끼고, 왼쪽에 있는 벽들을 지나가면 라디오들이 들린다. 주파수가 잘 맞았다가 끊어지고, 지지직 거림이 반복된다. 그 경험은 상당히 기묘했다.

그리고 그 벽의 끝에는 사람이 지나가지 못할 정도의 좁은 탈출구 같은 것이 보이고, 그 안에서 빛이 새어나온다.

오른쪽 사진은 사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탁자이다. 무턱대고 탁자에 손을 얹었다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질 지도 모르는...

이 뿐만 아니라 어느 공간에서는 기울어진 바닥이 나오고, 어떤 문으로 들어가자 그 곳엔 암흑밖에 없었다. 저 멀리 높은 곳에 아주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땐 왠지 공포스러워 빨리 밖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공간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 곳은 다양한 것을 체험해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이 곳을 둘러보는 데는 2시간여가 걸렸다.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들을 보여준 '유태인 박물관'. 베를린에 간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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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일정별로 정리하려고 하니, 특징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뮌헨과 어울리는 주제가 떠올랐다.

바로 구름이다.
내가 찍은 사진의 어디에서나 구름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과 잘 어울리는 뮌헨의 모습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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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마리엔 광장에 우뚝 솟아있는 신시청사.
이게 바로 신고딕 양식이라고 한다. 건축 양식이야 들어도 잊어버리기 하지만 내겐 이 시청사가 좀 괴기스러워 보였다.
시계탑 아래 한가운데에는 인형들이 있는데, 오전 11시와 정오가 되면 인형들이 돌아가며 춤을 춘다. 점심을 먹으려 이 근처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함성을 질러 와보니 인형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하얀 구름에 둘러쌓인 덕분에 괴기스러움을 좀 던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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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잘 못 들어섰다 만난 풍경이다. 별로 멋스러울 것 없는 건물이지만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멋진 건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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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중충한 풍경이다. 사실 내가 머물렀던 동안 뮌헨의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다. 파란 하늘 보기가 참 어려웠을 만큼.
잔뜩 낮게 깔린 구름과 그 아래 트램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트램은 전차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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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스 문. 밝게 찍힌 것도 있었지만 어두운 사진을 골랐다. 문이 그다지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 아래의 하얀 구름과 문 위의 그나마 파란 하늘이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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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그냥 지나가다 찍었다. 건물과 구름이 너무 잘어울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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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스 광장 앞의 분수이다. 건물을 가운데 두고, 아래에선 분수가 위에선 하늘이 서로 하얗다고 뽐내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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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보너스. 막 분수 앞을 지나는데 무지개가 떳길래 혹시라도 사라질까봐 얼른 찍은 사진이다. 그래서 무지개 말고는 볼거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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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734편을 타고 뮌헨으로 출발한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무조건 자는 습관이 들었다. 이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루하고, 이륙이 여행 설레임의 시작이라는 착각은 버린지 오래다. 비행기가 비로소 비행을 시작하고 좌석 벨트 불이 꺼져야 일어난다. 적어도 나는 이륙시의 잠이 가장 달콤하다.

뮌헨 도착 첫 날, 맥주와 케밥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본격적인 여정은 둘째날부터...

렌트카를 타고 퓌센으로 향했다. 그 유명한 노인슈반슈타인성을 보러 가기 위해서이다.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 비가 얄밉지만 흐린 날과 뮌헨은 묘하게 잘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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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으로만 듣던 아우토반을 빠져나오자 예쁜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의 이름은 잘모르겠으나 퓌센으로 가는 길에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빨간 지붕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은 그림처럼 잘어울렸다.

마을에 내려 사진을 더 찍고 싶었으나 차를 렌트해서 고속도로를 타기까지 시간을 너무 많이 끌어 퓌센으로 향하기에만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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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넓은 초원에 나무 한그루가 퓌센으로 가는 길엔 굉장히 많았다. 그냥 내려서 막 뛰어다니고 싶다. 물론 뛰면 힘들겠지만...

이 곳이 말로만 듣던 노인슈반슈타인성, 일명 백조의 성이다.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카메라가 비에 안맞을만한 곳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나무에 성이 가려졌다. (첫번째 사진)

성 밖으로는 높은 폭포와 아슬아슬해 보이는 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가 마리엔 다리. 저 다리에 가야 노인슈반슈타인성의 전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리 위에서는 계속해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러나 성에서 바라보는 다리는 그야말로 아찔할 뿐이다. (두번째 사진)

성의 뒷모습이다. 사진만으로 대강 짐작이 갈 지 모르겠으나 이 성은 아담한 방들이 계속 이어진 높은 건물이었다. 생각보다 화려하진(다른 성들에 비해) 않았다. 다만 모든 빛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왠지 슬쓸해 보이는 분위기의 성이었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지도... (세번째 사진)

노인슈반슈반타인성 바로 아래쪽엔 호엔슈반가우성이 있다. 2곳을 모두 보려면 17 유로, 한 곳만 보려면 9유로이다. 나는 유명한 성 하나를 선택해 보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노인슈반슈타인성만 봤다. 호엔슈반가우성은 사진도 찍지 않았다. 딱히 예쁘다는 느낌이 안들어서 비도 오는데 카메라에 물이 들어가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또 성 입장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입장 시간이 정해져있다. 티켓을 끊을 때 티켓에 입장 시간이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표를 끊었는데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노인슈반슈타인성은 루트비히 2세가 지은 성인데, 이 왕이 바그너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그너 오페라 속에 나오는 성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백조(성 이름에 있는 슈반도 독일어도 백조라는 뜻이다)도 좋아한 것으로 알려지는 데 성 곳곳에서 백조상을 볼 수 있다. 그 왕이 그토록 원하던 성이거만 정작 왕은 호수에 빠져 죽는 바람에(의문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이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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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억울하게도 성을 내려오니 비가 그쳤다. 여긴 퓌센의 중심가. 후에도 독일의 다른 도시들을 돌아다녔지만 퓌센과 퓌센을 오는 길에 보았던 마을이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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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센이 오스트리아 국경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혹 이런 풍경은 오스트리아의 영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다른 곳을 다닐 때도 빨간 지붕의 집들은 많았지만 뭔가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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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미러로 비치는 하늘이 너무 예뻐 한 컷. 참 특이하게도 독일은 환환 낮에도 전조등을 켜고 달려야 한단다. 전조등을 끄고 달리다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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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달려 다시 뮌헨으로 향했다. 당초 이 날 호프브로이를 들려 맥주를 마실 생각이었으나 뮌헨으로 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 바람에 배도 쫄쫄 굶고 슈퍼마켓에서 산 캔맥주와 버거킹 핫윙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독일에서의 둘째날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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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에 도착했습니다.

허술한 듯 하면서도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거치고 이제 사진 좀 찍어야지 하는 순간, 공항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사 시설이나 관청 건물들 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들었는데 공항 사진도 제지를 하더군요.

공항을 떠나면서 아쉬운 대로 버스 안에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공항의 모습입니다.



버스를 타고 식사를 하기 위해 한 호텔로 향하던 중, 차창 밖으로 현지인들을 만났습니다.
외국인들의 출입이 많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우리 버스가 지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줬습니다. 참 반갑더군요.

3번째 사진은 마치 사진을 피하는 것처럼 찍혔는데, 그게 아니라 창밖을 보고 가고 있는데 차 안의 저 청년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더군요.
저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며, 사진기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옆자리 앉은 친구에게 웃으며 사진 찍는다고 얘기를 하는 듯한 순간입니다.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얼굴이 안나와 안타깝습니다.


호텔에서 현지식을 접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것들은 주로 야채와 빵, 햄 치즈 등이었는데, 여기까지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나온 콩과 고기가 들어가 있는 국 같은 건 못먹겠더군요. 음식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나 맛은 육계장과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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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호텔에서는 계속해서 공연을 보여줬습니다. 전통 춤과 민요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 복장을 입고, 테이블 주변을 돌며 사진도 찍게 해줬습니다. 이때 팁을 줘야하는 건지, 안줘도 되는 건지 한참 망설였는데 아무도 주지 않길래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투르크메니스탄에 가서 제가 가장 많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금상들입니다. 도금인지 진짜 금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는 곳곳의 건물마다 금 동상들이 있었습니다.

공화국에서 의례 볼 수 있는 지도자 영웅화를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것을 봐도 감탄이 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편할 뿐이었죠.

사진은 2번째 사진 외에는 모두 차 안에서 이동 중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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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기념관에도 갔습니다. 믈론 바깥만 구경했습니다. 다른 동상들과 비교하자면, 레닌 동상은 조금 초라해보였습니다. 마침 레닌의 머리 위에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레닌 동상과 묘하게 어울리네요.

레닌이 이 곳에 있는 이유는 투르크메니스탄도 소비에트공화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종교는 이슬람정교입니다. 이 이슬람교가 87%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소련 통치하의 70여년간 예배 장소들이 폐쇄되는 등 종교 탄압을 받아 이들에게 이슬람정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민족 정체성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건물 내부의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이 내부가 가장 볼만 했습니다. 정교화된 무늬들의 창이 있고, 그것을 통해 모든 빛이 예배당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비슷하지만 유리가 아닌 형태라고 상상하시면 조금 쉬울 듯 합니다. 첫번째 사진을 확대해 맨 위쪽의 창문들을 보시면 짐작 가능합니다.

이상 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기를 마칩니다. 제가 본 곳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인 아슈바가트이고, 그 수도 역시 다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략 제가 본 것만 가지고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이 곳에선 상점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대체 어디서 무얼 해먹고 사나 싶더군요. 덕분에 기념품도 하나도 사지 못했습니다. 귀국 후 이 때문에 사람들의 눈치도 많이 봤습니다. ;;

또 흡연을 하시는 분들은 이 곳을 많이 불편해 하시더군요. 투르크메니스탄은 금연 국가입니다. 재떨이가 있는 실내와 재떨이가 있는 실외에서만 담배를 필 수 있는데, 실외는 재떨이가 있어도 담배를 필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호텔 앞이 아니면 실외에선 거의 담배를 못핀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순박해 보였습니다. 외국인들을 경계하고 신기하게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반가워하는 모습이 눈에 역력히 보였습니다. 말이 안통해 이야기를 못나눠본 것이 조금 안타깝네요.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러나 여행객들이 선호할 만한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권위적인 건물과 우상화 된 동상들은 그 국가 국민이 아닌 저로서는 불편한 것들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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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밤에는 위에서 봤던 온갖 권위적인 건물들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이 역시 밤이면 그 위엄을 뽐내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을 보는 듯 합니다. 국회의사당, 권위를 내세우는 대표적인 건물이죠.

우리나라나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아니면 다른 나라도 빛나는 그 건물들 외에 희미한 불빛 아래 살아가고 있는 그 나라 국민들을 조금이나마 더 생각했으면 합니다.
posted by 볼매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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