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그래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는 대체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엄마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영화는 무심하게 그러면서도 세심하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이제 굳이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크게 포커싱을 맞추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쳐버릴 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먼저, 엄마 이야기부터 하자.
영화 속 엄마에게는 오로지 아들인 도준이 밖에 없다. 도준이 없는 엄마의 생활이란 그려지지 않는다. 작두로 약초를 썰면서도 오로지 시선은 도준에게만 있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도준이 걱정 뿐이다. 도준이가 없는 삶은 엄마에게 의미가 없다.
그 사실이 나는 참 서글펐다. 자신의 삶이 없는 엄마의 삶이란 것은 먼훗날 엄마가 될 지 모르는 내겐 참 씁쓸한 현실이었다.
도준이가 살인 혐의로 구속되자 엄마는 사방팔방을 쫓아다니며,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려 한다. 급기야는 직접 수사를 벌인다. 엄마에게 너무 잘어울리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사용해 증거물품이 될만한 것을 경찰서로 가져가기도 하고, 아줌마라는 친숙함을 내세워 아이들에게 죽은 여고생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참 단순하고 쉬운 수사인데, 경찰들은 왜 이것조차 하지 않았을까? 경찰 권력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오랜 냉소를 엿볼 수 있었다.
영화 속 엄마는 참 영리하다.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은 주변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 해결한다. 위기 대처 능력, 상황 판단 능력도 뛰어나다.
그렇게 엄마는 진실에 한발짝, 한발짝 다가서고, 마침내 마주한 진실에서 엄마는 어떤 행동을 취한다. 그 선택에 우리가 수긍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 극중 엄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 걸까. 우리는 왜 그럴 수도 있겠다며 그 장면을 받아들이는 걸까. 사회 속에서 인식하는 모성애는 어쩌면 굉장히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도준이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리뷰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원빈에 대해 지적했다. 김혜자에 비해 너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공포의 시작과 끝은 바로 도준이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도준은 항상 사건을 몰고 다닌다. 그리고 엄마를 대하는 도준의 태도는 늘 뭔가 석연치 않다. 단지 귀찮은 것? 어려울 때 찾게 되는 것? 그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애증의 관계가 있다.
'저주받은 관자놀이'로 많은 것을 기억해 내는 도준. 어쩌면 그건 트릭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후반부, 도준이 엄마에게 건넨 물건은 많은 점들을 시사한다. 그 장면은 사실 너무 섬뜩했다. 도준이 그것을 건넸을 때는 이미 엄마의 행동을 알아차렸다는 것이 되고, 그걸 알아차렸다는 것은 엄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조용히 극의 흐름을 지배하는 건 오히려 도준이었다는 얘기다.
다시 전반적인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모든 것이 그저 잘 짜여진 영화처럼 보인다는 것, 우리가 엄마와 도준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든 점이 이 영화의 강점인 것 같다. 그건 조연 및 엑스트라로 출연한 모든 사람들의 연기와 위치가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짧게 지나가는 약사에서부터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세팍타크로 형사', 본드를 마신 학생들, 고깃집 불아저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어색하지 않게, 극의 흐름을 이어간다.(사실 어떤 영화들은 보다보면, 엑스트라는 너무 엑스트라 답다.)
그리고 장면 하나하나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향 효과와 조명, 카메라 움직임은, 영화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영화 그 자체의 진실을 알려준다. 다른 어떤 영화야 안그렇겠냐만은 영화가 끝나고나서야 그야말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더, '모성애의 끝'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에 요구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영화라고 생각해 본다.
뱀발. 그러고보니 이제 필수품이 돼버린 휴대폰은 언제나 늘 '진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일반인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품이 됐다고나 할까. 알고보면 참 무서운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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